지난 편에서 드가가 왜 그토록 순간과 프레임에 집착했는지 살펴봤습니다. 스튜디오에 머물며 기억과 스케치로 장면을 다시 짜 맞추던 화가, 그런데 결과물은 오히려 우연히 찍힌 스냅사진처럼 보인다는 역설도 짚었죠. 이번 편에서는 그 역설이 실제 캔버스 위에서 어떤 구도로 나타나는지, 대표작 세 점을 직접 뜯어보며 확인해보려 합니다.
발레 수업 — 리허설 한복판에 카메라를 세운 것처럼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한 이 작품은 드가의 대표작 중에서도 가장 자주 언급되는 그림입니다. 화면 오른쪽에 지팡이를 짚고 선 무용 선생 쥘 페로가 있고, 그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교실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지점은 인물 배치입니다. 전통적인 초상화나 단체화라면 인물을 좌우 대칭으로, 혹은 중심에 몰아 배치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정반대입니다. 몇몇 무용수는 화면 왼쪽 구석에서 등을 긁거나 옷을 매만지고 있고, 오른쪽 앞자리 소녀는 순서를 기다리며 지루한 표정으로 부채질을 합니다. 마치 리허설 도중 아무 예고 없이 카메라를 세워두고 셔터를 누른 듯한 배치입니다.
바닥의 마룻바닥 선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화면 안쪽으로 갈수록 급격하게 좁아지면서 깊은 공간감을 만들어냅니다. 넓은 화각으로 실내를 담을 때 나타나는 원근 압축과 닮았습니다. 드가가 실제 카메라 렌즈를 쓴 건 아니지만, 이런 원근을 눈으로 계산해서 캔버스에 옮겼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습니다.

《발레 수업》, 1873–1876
발레 스타(무대 위의 무용수) — 조명과 어둠이 나누는 두 세계
파스텔로 그려진 이 작품은 드가의 무용수 연작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구도를 보여줍니다.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도약하는 발레리나 한 명이 화면 중심에 밝게 떠 있고, 그 뒤편 무대 배경에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어렴풋이 서 있습니다.
이 남자의 정체를 두고는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무대 감독일 수도, 당시 관행이었던 발레리나의 후원자일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건 드가가 그를 화면 가장자리, 그것도 그림자 속 절반만 보이게 배치했다는 점입니다. 밝은 조명 아래 인물과 어둠 속에 몸을 반쯤 숨긴 인물. 이 대비는 노출 차이가 큰 장면을 찍을 때 사진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하이라이트와 쉐도우의 극단적 대비와 정확히 같은 원리로 작동합니다.
시점 또한 독특합니다. 마치 오페라 극장 위쪽 발코니석에서 무대를 내려다보는 듯한 각도로 그려졌습니다. 무용수는 화면 아래쪽에 작게, 무대 바닥은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배치돼 있습니다. 정면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평범한 관객의 시점이 아니라, 굳이 높은 자리를 골라 앉은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각도입니다.

《발레 스타(무대 위의 무용수)》, 1876–1878
오케스트라의 악사들 — 앞은 흐릿하게, 뒤는 선명하게
이 작품은 앞의 두 그림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흥미롭습니다. 화면 하단, 그러니까 관객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뒷모습과 악기 머리 부분이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첼로의 스크롤, 바순의 대롱, 악사의 뒤통수 같은 것들이 화면 밑동을 가득 채우죠.
그런데 이 전경 요소들은 하나같이 뭉텅 잘려나가 있거나 흐릿하게 처리돼 있습니다. 반면 그 너머 무대 위 무용수들은 작지만 훨씬 또렷하고 선명합니다. 얕은 심도로 촬영했을 때 나타나는 아웃포커스 효과, 그러니까 가까운 피사체는 흐리게, 먼 피사체는 선명하게 잡는 기법과 상당히 비슷한 인상을 줍니다.
드가가 정말로 초점의 원리를 알고 그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가 무엇에 시선을 두고 무엇을 흘려보낼지, 캔버스 안에서 명확한 우선순위를 정해두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이건 사진을 찍을 때 무엇을 선명하게 남기고 무엇을 배경으로 흘려보낼지 정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고민입니다.

《오케스트라의 악사들》, 1870년경
세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
발레 수업의 원근, 스타의 조명 대비, 오케스트라 악사들의 초점 배분. 소재도 색채도 다른 세 작품이지만 공통된 태도가 하나 있습니다. 드가는 화면 안의 모든 요소가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를 늘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우연히 놓인 것처럼 보이는 배치조차 실제로는 몇 번이고 고쳐 그린 결과였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질문을 조금 더 밀고 나가보려 합니다. 드가가 실제로 사진이라는 매체에서 무엇을 가져왔는지, 그리고 그가 왜 카페 테이블의 절반을 텅 비워두었는지.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들》을 비롯한 네 작품을 사진의 언어로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