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는 드가가 왜 순간에 집착했는지, 2편에서는 그 집착이 어떤 구도로 나타났는지 살펴봤습니다. 이번 편에서 다룰 질문은 하나입니다. 그림 속에서 사진을 엿볼 수 있다면, 대체 어디서부터 그런 걸까요.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들, 무용 교습소, 경주마들, 콩코르드 광장. 네 작품을 사진의 언어로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들 — 걷다가 우연히 셔터를 누른 것처럼
카페 안에 두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왼쪽 남자는 파이프를 물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오른쪽 여자는 압생트 잔을 앞에 둔 채 넋이 나간 표정입니다. 두 사람 다 화면 오른쪽으로 쏠려 있고, 왼쪽에는 텅 빈 테이블 두 개가 놓여 있습니다.
전통 회화라면 인물을 화면 중앙에 배치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인물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붙이고, 나머지 절반은 그냥 비워둡니다. 걷다가 우연히 눈에 띈 장면을 얼른 셔터로 담은 스트리트 사진과 비슷한 인상을 줍니다. 화면 왼쪽 아래 테이블 모서리도 프레임 밖으로 살짝 잘려나가 있고요.
이 우연스러운 느낌은 실제로는 전혀 우연이 아닙니다. 드가는 이 그림을 위해 실제 카페 라 누벨 아텐에서 특정 자리에 배우들을 앉혀두고 여러 차례 스케치를 반복했습니다. 무계획적으로 보이는 구도가 사실은 몇 번이고 다시 짜인 결과라는 뜻입니다. 이 그림이 처음 공개됐을 때 파리 평단은 술 취한 여인을 그렸다며 부도덕하다고 비난했지만, 정작 사람들이 불편해했던 진짜 이유는 소재보다 이 낯선 구도였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들》, 1875–1876
무용 교습소(École de danse) — 위에서 내려다본 광각의 시선
이 작품은 2편에서 다룬 《발레 수업》과 자매 격인 그림입니다. 같은 무용 교실을 소재로 삼았지만, 시점이 훨씬 높고 과감합니다. 마치 계단 위나 발코니에서 교실 전체를 내려다보는 듯한 각도로 그려졌습니다.
바닥의 마룻바닥 무늬는 화면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급격히 좁아지며 소실점을 향해 빨려 들어갑니다. 넓은 화각의 렌즈로 좁은 실내를 담을 때 나타나는 원근 왜곡과 거의 같은 원리입니다. 앞쪽 인물은 크고 뚜렷하게, 안쪽 인물은 작고 흐릿하게 배치돼 공간의 깊이를 한눈에 느끼게 만듭니다.
드가가 이런 부감 구도를 반복해서 그린 이유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게 일본 판화, 우키요에의 영향입니다. 당시 파리에는 일본 판화가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줬는데, 우키요에 특유의 비대칭 구도와 과감한 여백, 높은 시점이 드가의 작업에도 스며들었다는 게 미술사가들의 대체적인 해석입니다. 사진이라는 새 매체와 우키요에라는 낯선 미학이 한 화가 안에서 동시에 소화된 셈입니다.

《무용 교습소》, 1873년경
경주마들 — 화가가 먼저 밝혀낸 움직임의 진실
경마장에서 말들이 출발선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입니다. 말의 다리 각도, 근육의 긴장감이 놀랍도록 정밀하게 묘사돼 있는데, 여기에는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드가가 활동하던 시기까지 화가들은 달리는 말을 그릴 때 네 다리가 모두 공중에 뜬 ‘플라잉 갤럽’ 자세로 그리는 게 관행이었습니다. 그런데 1878년, 영국 사진가 에드워드 머이브리지가 연속 촬영 기법으로 말의 움직임을 초 단위로 쪼개 찍은 사진을 공개하면서 이 관행이 틀렸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실제로 말은 네 다리가 동시에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따로 있고, 사람 눈에 익숙한 플라잉 갤럽 자세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드가는 머이브리지의 사진을 접한 뒤 이전에 그린 말 그림들을 다시 손보기도 했습니다. 다만 여기서 짚어둘 부분이 있습니다. 드가가 사진을 그대로 베낀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사진이 밝혀낸 사실을 참고했을 뿐, 이를 자신의 드로잉과 색채로 재구성했습니다. 기술이 발견한 진실을 예술가의 시선으로 다시 번역한 셈입니다.

《경주마들》, 1885–1888
콩코르드 광장 — 카메라가 없어도 될 만큼 완벽한 크로핑
이 작품은 드가의 사진적 구도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그림입니다. 화면 왼쪽에는 실크해트를 쓴 신사가 두 딸과 함께 걷고 있고, 오른쪽 끝에는 남자 한 명이 몸의 절반만 보인 채 프레임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 오른쪽 인물이 핵심입니다. 얼굴 절반, 몸 절반이 화면 가장자리에서 그대로 잘려나가 있습니다. 전통 회화의 관점에서 보면 구도가 덜 완성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배치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오히려 살아있는 스냅샷처럼 느껴집니다. 인물이 걸어가는 도중 화면 밖으로 빠져나가는 그 순간을 붙잡은 듯한 인상이죠.
이 그림이 그려진 1870년대는 사진이 아직 걸음마 단계였고, 노출 시간이 길어 인물이 흔들리거나 프레임에서 잘려나가는 일이 흔했습니다. 화가들은 이런 결함을 실수로 여기고 피했지만, 드가는 정반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잘려나간 프레임이야말로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봤던 겁니다. 완벽한 구도보다 진짜처럼 보이는 구도를 선택한 셈입니다.

《콩코르드 광장》, 1875년경
세 편을 마치며
지금까지 에드가 드가라는 화가를 사진가의 눈으로 따라가 봤습니다. 그는 사진이 널리 퍼지기도 전에, 카메라가 훗날 보여줄 시선을 붓과 파스텔로 먼저 실험한 화가였습니다. . 크로핑, 부감, 노출 대비, 정지된 움직임. 지금 우리가 사진 용어로 부르는 이 개념들을, 그는 150년 전 붓과 파스텔로 실험하고 있었습니다.
이 네 작품은 모두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실제로 볼 수 있습니다. 언젠가 그 앞에 서게 되신다면, 그림을 보는 대신 한번 이렇게 상상해보시면 어떨까요. 내가 이 장면을 카메라로 찍었다면, 어느 자리에서 어떤 렌즈로 눌렀을까. 드가가 그림으로 먼저 던져둔 그 질문에, 답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